어린애를 돌보는 방법 +

 

똑똑-.

간결한 노크 소리가 적막으로 가득 찬 탐정사를 일깨웠다. 배부른 점심 후 몰려오는 노곤함에 꾸벅꾸벅 졸던 아츠시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번쩍 떴다. 흐르지도 않은 침을 흘린 느낌에 입가를 슥 닦으며 눈을 껌벅껌벅 빠르게 감았다 떴다. 주변의 반응은 아무것도 없었다. 쿠니키다 씨는, 잠깐 볼일로 밖에 나간다고 했었다. 시계를 보니 그때로부터 대략 한 시간 가량이 지나있었다. 이제 오실 때가 되었는데. 잠자코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던 아츠시는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쿠니키다 씨는 아니었다. 그였다면 노크 할 필요 없이 바로 들어왔을 것이다.

 

역시 잘못 들었나? 아츠시는 머리를 긁적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란포 씨는, ……자고 있었다. 분명히 자고 있다. , 요즘 이렇다 할 일거리도 없고 평화로우니까. 혼자 수긍하며 아츠시는 반대로 고개를 돌렸다. 타니자키 씨는…… 자고 있다? 이쪽을 향한 채 엎드려 자는 타니자키의 허리에는 나오미가 꼭 달라붙어 있었다. 그녀 역시 자는 듯했다. , 역시 평화로우니까? 어색하게 웃은 아츠시는 그 맞은편으로 고개를 빼꼼 들었다. 켄지는…… 당연하게도 자고 있다. 알차게 점심을 먹은 후 가장 먼저 잠에 든 이였다. 쿄카도 자고 있었고, 물론 아츠시 자신도 방금까지 꿈나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지만…… 이거 역시 심한 거 아닐까? 어째서 사무원들도 죄다 자고 있는 건데? 이래도 되는 겁니까? ? 무장 탐정사 이래도 되는 거냐고!?

 

그러고 보니 다자이 씨가 없네.”

 

, 분명 여기 있더라도 누구보다 한가하게 자고 있었을 테지만. 자신의 상사를 오늘의 날씨 얘기하듯 대수롭지 않게 깎아내리며, 아츠시는 다시 밀려오는 졸음에 반쯤 감긴 눈으로 쩍 하품을 했다. 아직까지 잠의 여파로 피로가 남아있었다. , 일을 해야 하는데……. 지난번 사건의 보고서를 끝마치지 못했던 것을 떠올리며 다시 크게 하품을 했다. 그러나, 탕탕. 눈가에 고인 생리적인 눈물을 쓱 닦아내던 아츠시는 재차 분명하게 들려오는, 어쩐지 아까보다 더 신경질적인 듯한 노크소리에 파득 놀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 ! 나갑니다! 나가요!”

 

헐레벌떡 뛰쳐나간 아츠시가 벌컥 문을 열었다. 당연히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탐정사 직원 전부가 잠들었다고 넋 놓고 있다가 간만의 손님을 기다리게 만들 뻔했다. 그나저나 꽤 큰 소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깰 생각을 않는 직원들은떨떠름한 표정을 금방 지워내고 아츠시는 문을 열자마자 어색하게 웃으며 손님을 맞았다.

 

죄송해요! 하하, 잘못 들은 줄 알고의뢰로 오신 거죠? 미리 연락을 하셨…… .”

 

……정정. 맞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열린 문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끔벅끔벅 눈을 감았다 뜬 아츠시는 당황스러워하며 빈 복도를 둘러보았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정말 잘못 들었던 건가? 고개를 갸웃거린 아츠시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설마 귀신같은 건 아니겠지…… 낮이니까, 등 뒤로 흐르는 식은땀을 애써 무시하며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그새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저기, 저 정말 착하게 살았거든요. 정말 이러면 곤란하거든요. 곤하게 잠들어있는 탐정사들을 원망스러워하며, 아츠시는 울상을 지었다.

 

쾅쾅쾅!!

 

문 앞에서 한 발짝 물러나자마자, 요란한 소리가 탐정사를 뒤흔들었다. 어깨가 천장에 닿을 듯 펄쩍 뛰며 경악한 아츠시는 벌벌 떨며 손잡이를 다시 붙들었다. 쿠니키다 씨, 어디 계세요, 제발 빨리 좀 와주세요! 아니, 쿠니키다 씨 귀신 무서워했었지. 란포 씨, 타니자키 씨! 이젠 일어나야 할 타이밍이라구요!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그제야 탐정사 직원들이 하나 둘씩 잠에서 깨기 시작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깬 이들 중 한 명인 타니자키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아츠시에게 물었다. 귀신만은 아니길 바라고 있었는데요……. 대답을 삼킨 아츠시가 곧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꾹 감고 문을 열었다.

 

……역시 없잖아!!”

 

꽉 감고 있던 눈을 떠도 여전히 빈 복도만 보이는 것에 아츠시가 절규했다. , 귀신! 아무래도 귀신이 맞는 것 같아요, 살려주세요! 전 잘못한 게 없어요! ……, 쿠니키다 씨의 돈으로 오차즈케를 몇 번 사먹긴 했지만! 그건 다자이 씨가!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오두방정을 떨며 어쩐지 고해성사를 하고 있는 아츠시를 멀찍이 서서 멍하니 눈에 담고 있던 타니자키가 한 마디 던졌다.

 

아츠시 군, 밑에.”

? 밑에?”

 

소리를 지르던 것을 멈추고 아츠시는 천천히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검은색의 둥그런 모자가 보였다. 모자? 분명 그것은 모자였다. 모자를 쓴 검고 쬐끄만 사람이었다. 검은 모자를 쓴 채 칠흑같이 어두운 코트를 어깨에 두른 그는, 줄곧 바닥만 바라보던 얼굴을 느릿하게 들었다. 붉은빛이 도는 머리칼이 보였고, 그리고

 

?”

 

……당장에라도 앞의 사람을 죽여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어린 아이가 아츠시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얼굴은 어디서 본 적 있는 듯 낯익었다. 트레이드마크인 모자와 화려한 머리색, 그리고 바다를 담은 듯한 푸른 눈을 가진 사람 중에 아츠시가 아는 인물은 단 한 명뿐이었다. 분명 기억 속의 그 사람은 이렇게 어리지 않았지만, 어쩐지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나카하라 씨?”

 

포트 마피아의 현 간부이자, 상사의 전 동료라는 나카하라 츄야그가, 수틀리면 당장 이 건물을 날려버릴 듯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는 눈앞의 꼬맹이인 것이 분명하다고.

 

 


어린애를 돌보는 방법

다자츄임

 

 


나카하라 츄야의 하루는 언제나 다를 바 없었다. , 체력단련, 휴식. 어쩌다가 술 한 잔. 그렇게 반복되는 시간들이었다. 보통은 휴식보다는 일과 체력단련으로 가득 찬 일과가 대부분이었다. 문제의 그날에도, 츄야는 보스에게 명령 받은 임무로 부하들을 이끌고 나갔었다. 성가신 적대 조직의 일부를 섬멸하라는 임무였다. 누군가에게 명령하기보다 직접 몸을 쓰며 싸우는 것을 즐기던 츄야는, 그날도 보스의 명령을 기꺼이 받아 그 조직이 아지트로 삼고 있는 창고에 잠입했다. 적절한 타이밍에 부하들과 함께 적들을 공격했고, 언제나 그렇듯 이 잠입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좁지 않은 창고 안을 누비며 누구보다 가장 신나서 적들을 해치워나가던 츄야는 그렇게 생각했다. 예상치 못한 자의 등장만 아니었더라면, 분명 성공적이었을 텐데.

 

……이능력자로군요.”

 

들어본 적 없는 이능력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모를 그 자의 목을 움켜쥐자마자, 츄야는 갑작스레 몸의 변화를 느꼈다. 옷이 헐렁해지고, 남자의 목을 움켜쥔 손은 작아지고 팔은 짧아지고, 시야는 점점 낮아졌다. 남자의 목을 움켜쥐던 손이 떨어지고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치켜들어야만 할 정도로 몸이 작아져버렸다. 당황한 부하들의 목소리들이 귀에서 맴돌았지만, 츄야는 허망하게 작아진 자신의 손바닥만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그 (빌어 처먹을 놈의) 이능력자를 붙잡으라 명령했지만, 츄야의 손에서 풀려나자마자 도망을 친 그는 벌써 모습을 감춘 후였기에 결국 놓치고 말았다.

 

입을 모아 죄송하다고 외치며 머리를 박는 부하들을 뒤로하고 본부로 돌아갔을 때, 작아진 츄야를 발견한 이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히로츠는 입을 가리고 웃었으며, 타치하라는 경악하며 입을 떡 벌렸다. 아쿠타가와는 평소보다 작아진 상사를 보며 놀란 듯 그 앞에서 머뭇거렸지만, 곧 조용히 눈을 감아 못 본 체 해주었다그게 더 비참했지만. 코요는 왠지 어릴 때의 츄야를 보는 듯해 반가워하는 눈치였고, 엘리스는 친구가 한 명 생긴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모리는 엘리스가 좋다면 그저 좋은 눈치였다.

 

하지만 엘리스의 맘에 들었다고 해서 마피아의 커다란 전력인 츄야가 어린 아이가 된 모습 그대로 마냥 남아있을 수는 없었다. 모리는 다른 이에게 그 이능력자를 찾아내라 명령했고, 작아진 츄야에게는 조금 다른 명령을 내렸다.

 

……다자이는 어디 있지?”

 

당연하겠지만, 이능력을 무효화시키는 이능력을 지닌, 다자이 오사무의 힘을 빌리라는 것이다. 그의 이능력이 이런 듣도 보도 못한 경우까지 효과를 내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시도라도 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내키지 않았다. 언제나 한결같이 충성을 바쳤던 보스의 앞에서 드물게 머뭇거렸고, 탐정사에 오는 내내 몇 번이고 다시 되돌아갈까 망설였다. 같이 동행해주겠다는 코요의 친절을 정중히 거절하고 홀로 탐정사로 향하는 길은 무척이나 멀게 느껴졌다. 물론 여러 번 망설임에 멈춰서고, 수십 번 그 죽여 버리고 싶은 이능력자를 욕하느라 도착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다.

 

다자이 씨는 아까부터 안 보였어요. 일이 있던 건 아니니 근처에 계실 것 같긴 한데…… , 전화 해볼까요?!”

아니, 됐어.”

 

츄야는 안절부절 못하는 아츠시를 힐끔 보곤 손을 휘저었다. 전화해 불러낼 정도로 조급한 마음이란 걸 그 자식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고, 조금이라도 늦게 이 꼴의 자신을 들키고 싶은 마음도 이유 중 하나였다. 놀리겠지, 당연히 놀리겠지. 재밌는 것을 찾았을 때 짓곤 했던 그 얄미운 얼굴을 다시 본다고 생각하니 위장이 꼬일 것만 같았다. 아침부터 먹은 거라곤 물 한 잔밖에 없는데도 체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다자이의 얼굴을 떠올리니 속이 불편해졌다. 기분을 얼굴에 드러내듯 험악한 표정을 짓자, 맞은편에서 쩔쩔매던 아츠시의 하얀 얼굴이 더 이상 하얘질 수 없을 정도로 창백하게 질렸다.

 

……, 뭔가 불편하신 거라도…….”

아니. ……그냥 몇 대 줘 패고 싶은 얼굴이 떠올랐을 뿐이다.”

 

, 설마 그게 절 말하시는 건 아니겠죠? 말하지 않아도 아츠시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에서 전부 읽혔다. 츄야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나오미가 가져다 준 잔을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츄야가 작아진 것을 염두에 둔 탓인지, 아이가 좋아할 법한 달콤한 향이 나는 코코아였다. 눈을 찌푸리며 뭔가 탔을까, 살펴보다가 탐정사와는 나름 평화 협정을 맺었던 것을 떠올리고 한 모금 넘겼다. 따뜻하고 달달한 음료를 마시니 불쾌하기만 했던 감정이 차분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츄야는 음료를 가져다 준 나오미에게 감사의 눈짓을 하다가 문득, 위화감을 느끼며 아츠시에게 물었다.

 

그런데 탐정사는 다들 한가하나?”

?”

……왜 다 여기 모여 있는 건데?”

 

마치 동물원 우리에 갇힌 동물이 된 듯했다. 소파에 앉은 츄야의 주위를 탐정사들이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맞은편의 아츠시와 타니자키, 란포. 음료를 가져다주고는 옆에 서서 돌아가지 않는 나오미. 멀찍이 떨어져 책상에 기대고 서서는, 차만 마시며 관심 없는 듯 굴지만 힐끔거리는 시선을 끊지 않는 요사노. 탁자에 걸터앉아 생글거리는 낯짝으로 상황을 구경하는 켄지. 그리고, ……옆에 앉아 왠지 모를 부담스러운 시선으로 츄야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

 

……어이, 쿄카?”

.”

 

즉답. 기다렸다는 듯이 나오는 쿄카의 대답에 츄야는 당황했지만 당황한 티를 최대한 내지 않도록 노력하며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나한테 할 말이라도 있어?”

.”

 

! 왜 또 즉답!? 망설임 없이 튀어나오는 대답에 당황하기도 잠시, 츄야는 이젠 탐정사에 남아있는 것이 어울려 보이는 소녀를 바라봤다. 코요 누님이 많이 아끼던 아이. 그다지 교류는 없었지만, 저 하얀 인호가 잘 챙겨주는 듯 전보다 눈동자에 생기가 돌았다. 아직 어둠에 많이 물들여지지 않았을 때에 빛의 세계로 빠져나올 수 있어서, 역시 다행일까. 가만히 빛을 머금고 있는 눈동자를 바라보던 츄야는, 곧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위화감 중의 하나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쿄카, 그런데,”

, ?”

…… 왜 나한테 반말을 하는 거지?”

 

지금은 탐정사의 손에 있다 하더라도 쿄카는 포트 마피아의 개였다. 자의였든 타의였든, 분명한 마피아 소속이었다. 츄야는 포트 마피아의 간부, 쿄카가 마피아에 몸담고 있을 시절에도 그녀보다 높은 신분이었다. 아무리 더 이상 그의 부하가 아니라고 해도 이렇게 전의 상사를 친구처럼 편하게 대하다니. 츄야라면 절대 못할 일이었다. 다자이놈 때문인가. 그녀석에게 물들어서 이렇게 건방지게 변한 거라고 생각하면 일리는 있지만. , 빌어먹을. 그놈 생각을 하니 또 기분이 나빠졌다. 짜증스럽게 표정을 구기다가, 낮게 욕설을 중얼거리는 것으로 얄밉게 웃는 다자이의 얼굴을 머릿속에서 털어내었다. 어찌되었든 포트 마피아를 우습게 보는 것은 가만두지 않는다. 차갑게 표정을 굳힌 츄야가 냉랭한 시선으로 쿄카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츄야 씨, 작은걸.”

하아?”

나보다도…….”

 

작잖아, .

 

.”

 

아무렇지 않게 해사한 얼굴로 직격타를 날리는 쿄카 덕에 얼이 빠져 입을 못 다문 채 아무 말도 못하는 츄야의 귀에, 간신히 막은 입 사이로 힘겹게 흘러나오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 죄송합니다! 고의는 아니었어요! 곧바로 석고대죄 하는 아츠시의 얼굴을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하며 눈을 부릅뜬 채 쏘아보던 츄야가 벌떡 일어섰다. 탐정사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모이는 것을 느끼며, 여전히 익숙지 않은 초롱초롱한 눈빛의 쿄카에게 향했다.

 

……작다니.”

 

그 누구의 것보다 커다랗던 자존심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났다. 원래 성인 남성보다야 키가 작은 걸 알고 조금은 체념한 상태였었다. 다자이에게 키로 놀림 받을 때에도 열은 받았지만 제 키가 정말 작으니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건 저렇게 어린애에게만큼은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었다. 애새끼보다도 작다니! 아무리 작아져도 한참 어린 아이에게만큼은 절대로 듣기 싫었다. 편안한 복장을 입고 길을 걷다 웬 아이스크림 노점상에게 , 꼬마야. 아이스크림 먹고 가지 않으련?’ 이란 말을 들었을 때에도, 처음 가는 옷가게의 점원에게서 손님, 아동복은 이쪽입니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이렇게 자존심 상하지는 않았다. 왈칵, 뻗치는 화를 참아내지 못하고 필터링을 거치지 못하는 입으로 험한 말들을 내뱉으려는 찰나,

 

…….”

 

쿄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잖아.”

 

작았다. 정말로 작았다! 츄야의 눈높이에선 쿄카의 턱 끝만 간신히 보였다. 더 이상 화낼 여력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츄야는 의욕을 잃은 채, 다시 풀썩 소파에 주저앉았다. 생각보다 키가 많이 줄어든 모양이었다. 재보고 올 걸 그랬나. 아니, 정확한 수치를 알았다면 더 비참했을지도. 좌절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츄야에게 본의 아니게 독설을 날린 쿄카가 멀뚱히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입어야 해.”

?”

마피아 사람은 탐정사에 오면, 그걸 입어야 해.”

그러니까, 뭐를?”

 

아니, 애초에 포트 마피아의 사람이 탐정사에 가면 입어야 할 옷이라는 것이 당최 무엇인지. 그것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츄야는 아직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머리를 붙들고 미심쩍게 쿄카를 쳐다보았다. 줄곧 조용히 앉아있던 타니자키가 쿄카를 향해, ‘정말? 진짜로?’ 하고 묻는 것이 영 심상치 않았다. 맹렬하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다자이가 오기까지 기다리기보다, 그냥, 이대로 돌아가는 것이 나을 듯한, 아주 불길한 예감이……

 

츄야 씨, 이거.”

 

빗나가지 않았다. 잠시 사라졌던 쿄카가 빠르게 돌아왔을 때, 그녀의 손에는 절대 눈을 믿고 싶지 않은 의복이 들려있었다. ……농담이겠지? 전혀 웃기지 않았지만, 츄야는 성격과 어울리지 않게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서 농담이라고 말해. 파들거리며 올라간 입꼬리와 상반되게 눈에 쌍심지를 켠 츄야를 향해, 쿄카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뭐부터 따져야 할지 모르겠는데.”

 

쿄카의 손에 들려있는 건, 츄야는 모르고 있지만 처음 탐정사에 들어왔을 때 그녀가 한 번 입은 적이 있었던 메이드복이었다. 할 말을 잃은 츄야는 한참 침묵을 고수하다, 어쩐지 칼칼해진 목소리로 겨우 말을 시작했다.

 

내가 왜 이걸 입어야 하지?”

포트 마피아였던 나는 처음 탐정사에 왔을 때 이거 입었어.”

, 이런 어린애 소꿉장난에 놀아줄 나이 아니고.”

하지만 나는 입었어.”

그러니까! 네놈은 아니겠지만 난 그런 나이가 아니라고!”

하지만 츄야 씨, 지금은 어리잖아.”

껍데기만 그런 거잖아! ……, 어쨌든 난 이걸 입어야 할 이유가!”

하지만, 처음 탐정사에 왔을 때 나는 이거 입었어.”

난 너처럼 여기서 살려고 온 게 아니야, 잠깐 볼 일 때문이라고. 방문 목적이 틀리잖아.”

하지만, 포트 마피아였던 나는 이거 입었어.”

……다 떠나서 일단, 나는 남자라고.”

하지만, 포트 마피아였던 나는 처음 탐정사에 왔을 때 이거 입었어.”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츄야는, 정말이지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질린 눈으로 도돌이표처럼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 쿄카를 쳐다보았다.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츄야를 반짝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며 쿄카가 다가왔다.

 

……대체 내가 왜!”

 

메이드복을 품 안에 한가득 그러안은 채.

 

 

#

 

귀엽네, 모자 군.”

맞아요! 잘 어울려요!”

 

결국 입어버렸다. 치마는 쿄카보다 작은 츄야에게 무릎에서 한 뼘은 더 내려왔고, 한쪽 어깨로 내려온 머리카락은 리본으로 묶었고, 머리 위에는 하얀 프릴 머리띠를 했다. 수치심에 얼굴을 붉힌 츄야는 누가 보아도 예쁘게 단장한 귀여운 소녀 같았다. ,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고개를 푹 숙인 채 이마를 짚은 츄야가 한숨을 쉬었다. 부하들이 이 모습을 보기라도 했다가는 다 때려치우고 잠적해버릴 테다. 목격자는 전부 다 죽여 버린 후에. 무서운 상상을 하는 츄야의 속내를 전혀 모르고 있는 탐정사들은 주위에서 그의 모습을 구경하느라 바빴다. 아까까지 험악한 표정을 보고 말도 제대로 못 잇던 아츠시는 한술 더 떠 사진을 찍으려 하고 있었다.

 

, 츄야 씨! 잠깐만 웃어주세요!”

……뒈지고 싶냐?”

……, 죄송합니다!!”

 

찍은 거 아냐? 그 사이에 찍었을까 의심되었지만, 얼굴이 허옇게 질려선 고개만 도리도리 내젓는 녀석에게 계속 추궁하기도 뭐해 관둔 츄야는 어째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인지,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몸 이곳저곳에 와 닿는 손길을 느끼며 거듭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쿄카.”

.”

……그만 좀 만질래?”

 

쿄카는 작아진 츄야가 유독 신기했는지, 억지로 메이드복을 입힌 후에도 그의 옆에 꼭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에 그치지 않고 츄야의 볼이나,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자신보다도 작아진 손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아마, 자신보다도 어린 아이를 본 적이 별로 없어서일까. 처음 이 아이를 봤을 때에는 아마도, 마피아의 감옥에 갇힌 상태였었지. 그것을 생각하면 이 손을 모질게 쳐낼 수가 없었다. 츄야는 소파에 앉아, 쿄카의 호기심 가득하지만 부드러운 손길을 그대로 받아내고 있었다. 정말 어린 동생을 대하기라도 하듯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는 쿄카와 가만히 그런 쿄카를 내버려두는 츄야를 탐정사들은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들에 칫, 하고 짜증 섞인 소리를 내려다가도, 다정하게 어루만지는 손길이 애 취급하는 것 같아 찝찝하긴 해도, 썩 나쁜 기분은 아니라 잠자코 있었다.

 

츄야 씨, 졸리세요?”

아니, ……졸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머리를 쓰다듬어지는 것은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하마터면 그대로 잠에 들 뻔했다. 누가 봐도 명확히 졸았던 츄야는, 적진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이곳에서 잠시나마 방심한 것에 당황하며 아닌 척을 했지만 탐정사들의 눈을 보아하니 전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젠장, 단순히 작아진 것이 아니라 정말로 어린애가 되기라도 한 건가? 탐정사 안은 따뜻했고, 머리를 어루만지는 손길은 부드러웠고, 머그잔에 담겨있던 코코아는 달콤했다. 어린애라면 이 삼박자로 충분히 졸릴 수가 있었다. , 미간을 찌푸린 츄야는 밀려오는 하품을 억지로 참아내며 시계를 바라봤다.

 

그나저나, 이쯤이면 되지 않았을까. 충분히 쿄카의 소꿉장난에 맞춰 놀아주었다. 마피아답지 않게 굉장히 너그럽게 굴었던 츄야는, 다시금 시간을 확인하며 불안한 표정을 애써 갈무리했다. 사실, 시계를 보고 나니 조급한 마음이 일었다. 아츠시의 말에 따르면 곧 다자이가 돌아올 것 같은데, 절대, 죽어도 이 꼴로는 마주할 수 없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할복을 하고 말지! 불안하게 떨리는 눈으로 닫혀있는 탐정사 문을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열릴 것만 같아 조마조마했다. 입술을 질끈 깨물며 츄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당장 이 빌어먹을 복장을 벗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느낌이 맹렬하게 들었다.

 

이제 갈아입을래.”

벌써?”

벌써라니, 이쯤이면 충분했잖아.”

 

아쉬워하는 쿄카를 뒤로하고 츄야는 다시 원래 옷으로 갈아입으러 문으로 향했다. 다자이가 오기 전에 갈아입으려면 빨리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츄야의 마음과는 반대로, 평소보다 더 짧아진 다리를 빠르게 움직여 나가려는 순간,

 

다녀왔습니다~”

 

급하게 몸을 돌아 얼굴을 마주하는 것을 피한 츄야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눈동자를 굴렸다. 젠장! 생각보다 더 일찍 와버린 다자이 덕에 패닉이 와버린 츄야는 그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동상처럼 굳은 채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어떡하지, 절대 나인 걸 들키면 안 되는데. 이대로 튀어버릴까, 아니, 이 차림으로 밖에 나간다고? 죽기보다 싫었다. 마치 햄릿처럼, 극단적인 삶의 기로에 서게 된 듯한 느낌을 받으며 츄야는 절망했다.

 

아아, 정말이지 쿠니키다 군은 너무하다니까. 마침내 나와 동반자살 해줄 완벽한 여성을 찾았는데 말이지, 쿠니키다 군의 방해로 망쳐버렸다구. 어떻게 생각해, 아츠시 군?”

시끄럽다. 네놈 때문에 예정보다 시간이 훨씬 늦어버렸잖냐.”

재미없네, 쿠니키다 군. 그렇게 시간에 뒤쫓겨 살다간 이십대에 흰머리가 왕창 날 거라구? 이야, 백발의 쿠니키다 군이라니~ 전혀 멋지지 않은 걸. 봐보라고, 벌써 흰 가닥이 몇 개나 보이기 시작했잖아?”

그것, ……정말인가.”

에에, 쿠니키다 군, 정말 몰랐던 거야? 특별히 팁을 알려주도록 하지. 검은 머리카락을 유지하는 방법은 머리에 가끔 식용유를 뿌려주면 좋다! 자자, 메모해야지 메모!”

검은 머리카락을…… 유지하는 방법은……

거짓말이지만.”

식용유를, ……죽인다 네놈!!!”

 

돌아오자마자 벌어지는 다자이와 쿠니키다의 싸움(일방적인 다자이의 놀림)이 일상이었던 탐정사들은 익숙했지만, 몸을 돌리고 있어 귀로만 듣고 있었던 츄야는 쿠니키다에게 왠지 모를 애잔한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동병상련일까. 저것이 정말 저 둘의 일상이라는 게 안 봐도 뻔해서, 츄야는 별로 접점도 없는 쿠니키다가 한없이 측은해졌다. 언제 한 번 술잔을 나누는 것도 꽤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며 두 사람이 저러고 있는 틈을 타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보다 낯선 이의 존재에 반응하는 다자이가 더 빨랐다. 그대로 발을 옮기려는 츄야의 앞으로 다자이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라, 그런데 이 꼬마아가씨는 누?”

 

. 츄야의 입술 사이로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좆됐다. 그대로 욕설을 입 밖으로 중얼거린 츄야는 쿠니키다의, 어린아이가 그런 욕설을 쓰면 안 된다는 고함을 들으며 생각했다. 이대로 생을 마감하는 것도 썩 괜찮은 결말이 아닐까? 음울한 눈으로 힐끗 창문에 시선을 두었다. 지금의 몸이라면,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져도 한 번에 뒈질 수 있지 않을까.

 

……츄야?”

 

드물게 당황한 다자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진지하게 고민에 빠진 츄야는 슬쩍 품 안에 지니고 있던 총을 매만졌다. 역시 혼자 죽는 건 억울했다. 그래, 총을 쏴서 저놈의 대가리를 뽀개 버리고 내 머리통도 박살내버리는 거야. 총을 한손에 쥐기 버거울 정도로 작아진 자신을 여전히 깨닫지 못한 채 츄야는 혼자 그렇게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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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어주신 스칼렛님과 검은 머리카락을 유지하는 비법을 알려주신 스칼렛님과 대사와 문장을 도와주신 미이님과 스칼렛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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